폭력의 역사-2.반성은 살아있는 사람만이 [산문] 사자 이야기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2.반성은 살아있는 사람만이

 

 

  "사자 형, 오랜 시간이 지났어."

  나는 형에게 다가가 갈기를 만지고 배에 머리를 뉘고 드러누웠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안부가 궁금했는데 네가 어디로 갔는지 도통 모르겠더라. 나에겐 그 흔한 전화도 없잖아."

  사자의 배에서 꾸르릉 소리가 들린다.

  "하노이에도 갔었고, 화성에도 갔었고, 지금은 치앙마이에 있다가 오는 길이야."

  "먼 길을 지나왔구나. 지름길로 올 수도 있었는데."

  ", 내게는 반성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어. 공간도 필요했고. 아주 간절히 말이야. 형도 알잖아. 난 한 평의 땅도 없어. 한 평의 땅만 있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해."

  "넌 아직 뭔가를 소유해야 네 삶이 달라질 거라는 거야?"

  "그건 아닌데, 뭔가 미련 같은 거 같아."

  "그래서, 반성은 많이 했어?"

  ", 반성 많이 했지. 그리고 반성에 따른 행동도 많이 했고. 때론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같아. 더 반성해도 되지만 이젠 반성 따위 하고 싶지 않아."

  “짜식, 더 반성해야겠구나.”

  “그런지도 몰라. 난 솔직히 말해서 더 반성하며 살고 싶어. 하루라도 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그런데?”

  “그런데, 난 혼자 일어날 힘이 없어. 제발 시간만 그리고 공간만 있다면 혼자 일어날 텐데, 지금 당장은 어려워. 내 나이 때문일 수도 있어. 난 사회 통념상 어른 더하기 어른의 나이거든.”

  “그래서?”

  “배를 탈까도 생각해봤어.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라는 선원이 되는 거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거야.”

  “그런데?”

  “, 나는 선원이 될 시간도 없었어. 다들 내게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했거든. 난 지친 어른인데. 남들이 보기엔 내가 엄청 세게 보였나?”

  “그래서?”

  “도망쳤어. 반성에서도, 어른인 척하는 모두에게서.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이웃들에게서도. 어쩔 수 없었어.”

  “그게 최선이야?”

  “난 최선이 뭔지 알아. 하지만 내겐 최선을 선택할 힘이 없었어. 대신 차악을 선택했어. 차선도 힘들었거든.”

  “난 네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 있어. 그건 너도 알 거야. 너에겐 네가 행복을 느끼는 사랑하는 이웃과 가족이 있잖아.”

  “알아.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더 반성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이게 전부야. 그런 것 같아.”

  사자는 내 얘길 한참 듣다가 노을을 바라본다.

  “참 예쁘지. 저 노을, 그리고 바람. 그리고 풀잎의 노래.”

  “하지만 사자 형.”

  “더 얘기하지 않아도 돼. 오늘, 지금 이 순간은 저 노을만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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