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비엣남어는 하나의 세상이다. [무늬] ⇒ 2009년 이후


  비엣남어로 딱 한 번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뜻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느낌으로 전해지는 의미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지금 하노이에 살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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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는 낡은 도시다. 동시에 젊은 도시다. 이 도시는 역동적이면서 보수적이다. 그래서 더 새롭다. 나는 이곳에서 한국어로 1/3을 영어로 1/3, 비엣남어로 1/3을 살고 있다. 이곳이 하노이인데도 내가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이유가 한국어의 비중이 큰 이유 중에 하나다.
  모든 외국어가 그럴 거라 생각한다. 새로운 언어 속에 산다는 건 새로운 세상에 산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엣남어는 내게 하나의 세상이다. 평행 우주처럼 내겐 새로운 세상이 하나 열렸다. 그런데,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아주 보편적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비슷한 욕구를 지닌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니까.
  사람 사는 모습이 뭐가 크게 다르겠냐만, 난 어제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친구에게 처음 만난 비엣남 사람이 내가 혹시 게이가 아니냐고 물었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만으로 내 나이 마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게이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내겐 오히려 충격이었다. 여러가지로 놀랍다.
  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인도 친구들이 놀러왔다. 그들은 너무나 맛있는 인디아 커리를 만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아시스와 시다드. 쿤단은 오늘 다른 친구를 만나느라 오지 못했다. 아시스와 시다드는 마음이 따듯한 친구들이다. 이곳 하노이에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 난 정말 행운인 것 같다.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들 역시 그렇다고 했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내가 만나고 있는 하노이는 따듯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친구들은 하나 같이 모두 따듯했다. 이 따듯함이 계속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넓은 가슴은 아니어도 좁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올해 겨울, 하노이는 다른 때보다 더 추운 날이라고 하지만 난 춥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하다. 따듯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리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국의 친구들이 따듯해서. 가슴 따듯함은 항상 전염된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대에게도 나의 따듯함이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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