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한비자』를 읽으며 171224 [읽다] 길을 읽다


  하노이에서 이북으로 『한비자』를 읽습니다. 이제 반 정도 읽은 거 같아요. 종이책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네요. 책 읽는 일, 글 쓰는 일에 더 집중해야겠어요. 이외의 것은 잠깐 두뇌를 헷갈리게 만드는 달콤한 과자 같아요. 과자는 먹고 나서 배라도 부르지 한눈 파는 일은 배도 부르지 않네요. 『한비자』의 두 구절을 옮겨봅니다.


  "우리를 설치하는 것은 쥐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겁 많고 약한 자가 호랑이를 굴복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법을 세우는 것은 증삼이나 사어를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군주로 하여금 도착 같은 자를 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부절을 만드는 것은 미생 같은 사람을 예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비간처럼 절개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것을 기대하지 말고 난신이 속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말라. 겁 많고 나약한 사라이 복종시킬 수 있는 방법에 의지하고, 어리석은 군주도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을 장악해야만 한다."(26편 중)


  "현명한 군주는 보기 쉽게 표지판을 만들고, 알기 쉽게 가르침을 베풀며, 따르기 쉽게 법을 만들어 지혜나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백성이라도 그것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윗사람이 사사로이 권위를 이ㅣ용해 해를 끼치는 일이 없게 되고, 아랫사람이 어리석게 죄를 범해 처벌받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27편 중)


  적고 보니 모두 제게 해당되는 말이네요. 다음 달이면 제 책이 이북으로 나옵니다. 제목은 『벼락맞은 놈』입니다. 아직 출간 전이에요. 출판사에서 지금 표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제가 비판하고 부끄러워 했던 모습을 지금 현재 제가 하고 있으니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쓰다보니 『한바자』 얘기가 아니라 어느덧 제 한탄을 하고 있었네요.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을 느꼈으니 이제 덜 부끄럽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상업화된 예수의 생일, 그의 생일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를 그가 죽음 앞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사랑이라는 신념을 생각해봅니다. 그가 율법학자들에게 자신은 율법을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고자 왔다는 얘기도 함께 생각합니다. 예수라는 사내에 비하면 제 삶은 초라합니다. 한비자가 말한 법치의 삶에 비해서도 초라하죠. 하지만 적어도 덜 부끄럽게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니까요. 그의 생일 전날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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