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주의 그리고 함께 1 [무늬] 일상의 인문학

상대주의(relativism) 그리고 함께 1


  내가 이해하고 싶은 상대주의는, 내가 정의하고 싶은 상대주의는 차이의 인정. 곧 상대주의란 틀림(否)이 아니라 다름(理)이야. 그렇다고 해서 너도 맞고 나도 맞고 틀린 건 하나도 없다는 뻔한 얘기는 아니야. 우린 생명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잖아. 이런 생명 존중의 단단하고 딴딴한 중력 위아래에 상대주의가 위치해 있어. 맞아, 바로 네가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 바로 네 옆이야.


  상대주의를 말하고 있는 난 지금 하노이(Hà Nội)에 있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건 한국 시간으로는 22일, 비엣남(Việt Nam, 앞으로 베트남은 이곳 발음대로 비엣남으로 할 거야. 내 비엣남어 실력이 형편 없어서 이렇게라도 기억하지 않으면 배우기가 더 힘들 것 같아서야. 이해해줘.) 시간은 21일 밤이야. 내가 비엣남에 방문한 것도 두번째, 하노이에 방문한 것도 두번째야. 처음 비엣남에 왔을 때도 하노이에만 있었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야. 첫번째 방문은 보름 정도였어. 올해 1월이었는데 한국은 눈발이 숑숑 날리는 무척 추운 날씨였고 하노이는 가끔 소나기가 쏟아지는 초여름과 초봄 날씨였지. 첫 하노이행은 두번째 방문을 위해 한 포석이었어. 그리고 어느덧 지금은 하노이에서 세번째 밤을 보내고 있어.
  오늘 한국엔 눈이 내렸나봐. 까똑으로 어머니는 내게 눈이 쌓인 길거리 영상을 보내줬어. 나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영상을 작은 카페에서 만난 비엣남 소년 소녀에게 보여줬고. 지금 어머니가 계신 곳은 경기도 안산, 안산에 내리는 눈발이 아름답다고 하더라. 이곳에서는 눈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거야. 처음 보는 건 보통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아. 마치 싸이의 뉴페이스처럼. 하지만 그건 잠깐이지. (24일까지)


  어제 나는 첫 비엣남어 수업을 했어. 꼬 찌는(꼬가 여자 선생님을 부르는 말이야. 선생님의 풀 네임은 PHI HA CHI야. 미들네임은 쓰지 않고 우리에게 찌라고 부르라고 했어. 물론 앞에 꼬를 붙여서) 내 첫 비엣남어 선생님이고 우리 반은 일곱 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우리 반 학생은 딱 세 명이야. 나와 지앙(이름이 아니라 성이야. 닉네임이 라이언이라고 했어.), 아시스(Ashish). 친구들 이름도 아직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발음이 힘들어. 특히 인디아 출신인 아시스가 그래. 아시스의 경우엔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성을 부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 쿠마르, 간단하잖아. 하지만 선생님은 지앙 지안후안은 지앙으로, 아시스 쿠마르는 아시스라고, 난 하신이 아니라 신이라고 불러. 정말 만화 제목처럼 『신이라고 불린 사나이』가 됐어. 하긴 'HASHIIN'을 발음하려면 보통 '하시~ㄴ'이라고 해야 하니까 '신~'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 물론 이건 모두 내 추측이야. 내일 두번째 수업이 있는데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부를지 궁금해. 선생님이 부른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지 아니면 이름을, 혹은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를 지 말이야.     

 (계속)



  이 글은 제목에 번호를 달면서 계속 쓸 생각이야. 처음엔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이다'를 '이야'로 고치면서 긴 글이 되어버렸어.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렇게 서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긴 호흡으로 함께 걸어갈까 싶어. 함께 걷자.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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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상대주의가 있어.
  상대주의를 말하고 있는 난 지금 하노이(hà nộ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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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주의를 말하고 있는 난 지금 하노이(hà nộ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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