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는 촌스럽다고 했지 [무늬] ⇒ 2009년 이후



열일곱이었을까. 그림을 그리던 친구는 내게 색 중에 가장 촌스러운 색이 보라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촌스러워도 보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촌스러워도 그게 사랑이라면 보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나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의 사랑은 어떠했는가. 나의 에로스적인 사랑은 모두 다 부서지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탓이고 네 탓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이 먹었다. 서른아홉을 지나 이제 곧 마흔이다. 가장 최근에 한 사랑은, 내게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찾아왔었다. 여름, 가을, 겨울...하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나의 사랑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그녀와의 헤어짐은 여태껏 가장 찌질했으며 더러웠다는 건 확실하다.

달빛 아래 함께 깍지를 잡고 걸으며 처음부터 그녀가 결혼을 얘기했고, 사귄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내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이유 때문일까. 모두 나의 착각인 걸까. 그 속삭임에 걸었던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다 주고 싶었다. 가진 게 없어서 해준 것도 없었지만 내 모든 걸 그녀에게 주었다. 난 정말 촌스럽게 사랑했다. 그리고 세련되지 못하게 이별했다. 첫사랑도 아닌데. 첫사랑처럼 사랑했다.

내 나이가 십대도 아닌데 아직까지 그녀가 밉다. 지금까지 나를 떠난 모든 여자가 행복하길 빌었지만 내게 세련된 이별을 얘기하는 그녀에게 모질게 대했다.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녀가 밉다. 좋아하는 연극도 연극에서 만난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그곳에 있다는 이유로. 벌써 몇 번의 계절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힘들어 하고 있는 내가 바보 같다. 곧 불혹인데... 내가 생각했던 마흔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마흔이 되기 전에 좀 더 커야겠다. 미워하는 마음이 사람을 좀 먹는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힘들다. 이젠 미워하고 싶지 않다. 내게 다시 사랑이 찾아올지 모르겠다. 기대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살 건데, 난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를 미워하는 나쁜 마음과 못된 힘을 좋은 마음과 좋은 힘으로 변화시켜야겠다는 것뿐이다. 쉬운 것 같으면서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난 아직까지 살아 있지 않은가. 죽을 것만 같았는데 죽고 싶었는데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아직까지 숨 쉬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천천히 걷자. 매일 하나씩 늘어가는 나의 흰 머리카락이 나 스스로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살자.


   그녀에게 언젠가는 이 말을 해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안하다. 잘 살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더 이상 없는 내일의 불안을 만들지 말고 오늘 스스로 평화롭게 살기를. 사람들을 용서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며 살기를. 잠깐이지만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스윗 소로우


빅토리아

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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