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에게; 친애에 대하여 [무늬] 일상의 인문학


  단비에게; 친애에 대하여

 


 

  단비야, 너의 이름을 부르며 오늘 하루도 오산과 화성을 오가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1990년이었다. 열네 살 송골송골 여드름이 막 돋아나기 시작한 여름날 우리가 만나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우린 각자 살아온 세월보다 서로를 알고 지내온 시간이 더 많은 나이가 되었구나. 다시 한 번 반갑다 친구야. 난 한국인문사회연구회에서 며칠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이런 구절을 읽었다.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친구가 없는 삶은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1155a5.)

  ‘소금을 같이 먹어 보기 전에는서로를 알 수 없[].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그렇게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친구로 받아들일 수도 또 친구일 수도 없다. 서로에게 서둘러 친구처럼 행세하려는 사람들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지만 친구는 아니다. 만일 그들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또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말이다. 친애philia에 대한 바람은 빨리 생겨나지만 친애는 그렇지 않다.(1156a28-32.)


  단비야, 이 구절을 읽으며 난 소중한 내 친구인 너의 모습과 사랑하는 내 동생 태훈이와 내가 이번에 첫 연출을 맡게 된 극단 오아시스 사람들을 떠올렸다.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존재라면 우정이라든지 친애에 대해 생각하지 않겠지만 우린 갈등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 아니냐.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부터 이웃까지 우리는 매일 같이 만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행렬 속 그들 중 누군가 처음 본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혹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이야.

  그 동안 너와 나 우리의 우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까까머리 중고교에서, 네가 막 스물이 되었던 그 때 시 시절, 군대에 있던 시절까지, 또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의젓한 대한이와 예쁜 우리를 기르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네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컸는지 생각해본다. 열네 살이었던 우리는 바쁜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서른여덟이 되었다. 우리에게 세월의 이끼는 예쁘게 잘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탁월성을 갖춘 좋은 사람이었을까. 가끔 우리와 함께 했던 친구들의 소식을 들려주는 네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다. 그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네 따듯함에 전염되어 행복하다.

나는 가을 늦은 장마처럼 느껴지는 비가 내리는 화요일 오늘 우리의 친애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애의 종류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탁월성에서 유사한 사람들 사이에 성립하는 친애라고 한다. 나는 너와 나의 관계가 이것이길 바란다. 둘째는 유익을 이유로 맺어진 친애다. 유익을 이유로 맺어진 친애는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어떤 좋음을 이유로 상대에게 애착을 갖게 된다. 따라서 유익이 사라지면 그들의 관계는 해체된다. 셋째는 즐거움의 친애다. 즐거움의 친애는 에로스적이며 즉흥적이라 쉽게 변하고 만다. 너와 나는 즐거움이 아닌 유익도 아닌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좋은 관계라 생각한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하루가 지나도 그치지 않는다. 이런 날 너와 오산에서 춘천닭갈비와 함께 소주잔을 비워내야 하는데 삶은 그리 무르며 부드럽지 않다. 그래도 며칠 전 너와 함께 한 식사는 너무 좋았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지만 우린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즐겁게 웃었다. 너의 따듯한 손을 잡았다. 건강해라. 친구야.

 


 2014년 10월 21일


* 물향기신문에 「단비에게」라는 제목으로 2014년 10월 22일 연재. 

클릭⇒http://www.newstow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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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j 2014/10/28 13:18 # 삭제 답글


    단비 같은 친구를 둔 김작가님도, 김작가님 같은 친구를 둔 단비도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불역호하는 사이겠네요~

    저도 참으로 친구가 귀하고 소중한 시기를 지나는 듯..
  • 김태우 2014/10/28 14:36 #

    그대라는 좋은 친구를 두어 참 고마운 세상이오.
  • SHiiN 2016/10/27 02:53 # 답글

    물향기신문은 뉴스타워라는 신문으로 확장개명. 여기에라도 이 글을 남겨두길 잘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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