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2001.07.24 [무늬] ⇔ 2009년 이전

오랜만에 입석을 탔습니다. 무궁화호 입석은 정말이지 오랜만입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잊어버릴뻔 했던 풍경을 발견했습니다. 그 풍경들을 다 말하자면 오늘 밤을 꼬박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때문에 오늘은 그 풍경중에 하나를 지금 얘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열차의 맨 끝 호로 갔습니다. 그리고 창밖 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통일호를 타면 좌석이 있어도 꼭 내가 두고온 풍경을 바라보곤 했는데, 문이 달리고 창문이 굳게 닫힌 무궁화호에서 두고온 풍경을 바라보는 건 또 새로웠습니다. 예전처럼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열차에서 바라보는 건 아니었지만 눈에 보이는 침목들이며 멀어지는 산들이며 철길 옆의 슬레트지붕이며 참 새롭더군요.

그 풍경들 속에서 갑자기 튀어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만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남.

모든 만남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만남이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오늘만의 얘기는 아니지만 요즘들어 더한 것 같습니다. 옆 좌석에 누가 앉아도 한 마디 안하는 풍경. "~ 좀 어색하지만..."이라며 넘어가는 일들. 하긴 무서운 일이 한두 가지겠습니까. 하지만 열차 여행이, 혹은 열차로 어디론가 간다는 게 즐겁지 않은 건 이런 일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쉽게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참 바쁜 사람들. 피곤한 사람들. 그들에게 여유를 주고 싶습니다.

인사하고 함께 얘기하고 싶습니다. 딴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함께 가지만 만나서는 안되는 철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고 온 풍경들. 그 길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그곳에 감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감정들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 풍경들을 아롯이 새겨두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청도(靑島)에서 일하다가 비자 발급 때문에 입국한 한 사람을 열차에서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외국에 있어도 한국이 그립지 않은 건 그곳에서도 위성방송으로 한국말이 들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그 사람은 쉴새 없이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한국말이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국어로 모국의 사람과 얘기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한참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의 잠자는 모습이 그렇게 편해보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입석밖에 탈 수 없었던 붐비는 무궁화호 열차. 사람들은 모두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창밖풍경이나 신문이나 자신의 두 눈꺼풀만 쳐다봅니다. 홍익회 직원은 쉴새 없이 오가지만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두고온 풍경들, 오늘 두고 온 그 풍경들이 계속 제 주위를 멤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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