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오산천 이야기-오산시민신문(2011/06/07) 연재 마지막.

김태우의 오산천이야기_41)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를 마치며
김태우의 오산천 이야기
 
김태우 작가
▲ 김태우 씨     ©오산시민신문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서로 같은 꿈보다는 다른 꿈이 많던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단짝 친구들과 20년 후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를 적어 타임캡슐에 넣었다. 3ㆍ8 오일장이 열리는 오산시장에서 작은 항아리를 사서 그 속에 각자의 꿈과 희망을 적어 넣고는 큰 나무 아래 땅 속에 꼭꼭 묻어 두었다. 20년 후 타임캡슐을 열어보자는 약속과 함께.

2000년까지 꼬박 5년이 남은 해였다. 하지만 우리는 20년이 되기도 전에 그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다. 세기가 바뀌기도 전이었다. 타임캡슐을 묻어둔 그곳만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개발되거나 파헤쳐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곳에 길이 뚫리고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대학 진학과 군 입대 때문에 누구도 그곳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돌아온 고향에서 우리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언제나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한 공간이 이미 변할 대로 변해 버린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 열아홉의 친구들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런 고물가 시대에는 은행이자가 수익률이 낮다며 주식과 땅값을 이야기한다. 그 꿈 많던 친구들도 변해 버렸다. 꿈의 단일화. 소원의 단일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부자’가 되었다.

오산천은 이 모든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이 물장구 치고 가재와 다슬기를 잡던 하천은 복개되어 그 위에 도로와 건물이 들어섰으며, 사람들은 이제 그 기억마저 잃어가고 있다. 이 모든 변화를 탓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것은 어떻게든 꿈틀거리며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누군가를 소외하거나 배제하는 변화여서는 안 된다. 지난 세월 오산천은 소외와 배제의 대표적 산물이었다. 이름을 가지고 있던 하천은 이름을 잃었으며, 어떤 하천은 아예 폐쇄되어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사라진 공간에서 우리는 어떤 경험도 할 수 없다.

삶은 어느 특정한 공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공간이 삶의 공간이다. 집과 거리와 직장에서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 일하고 놀고 쉬는 공간이 있다고 할 때 우리의 집과 거리와 직장은 어떤 공간인가. 왜 사람들은 휴가철이 되면 산으로 바다로 떠나야 할까.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 왜 사람이 붐비는 공간으로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떠나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그곳에 축제가 있어서? 아니다. 내 삶의 공간이 휴식을 취하기에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오산천은 우리 삶의 공간이지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는 관상의 대상이 아니다. 과연 오산천은 우리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인가.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나의 것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일상의 경험은 소중하다. 일상의 경험이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은 조금 위험하다. 창의성과 다양성이 중요하다면서 획일화 시키려는 헛소리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ㆍ중ㆍ고 12년 동안 입시교육에만 매달려 있는 기이한 현상이 어디에 있을까. 헛소리가 넘치는 세상에 그 헛소리에 매달리다 보면 나의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의 경험을 따라가기 급급한 삶, 내가 설정한 나의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경험은 너무나 공허하다. 자연의 빛과 색을 잃어버리고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에서만 색을 인지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나는 오산천을 돌아다녔지 다른 하천을 돌아다니지 않았다. 내가 다니지 못한 길에는 다양한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어떻게 보존하고 소위 ‘지속적 발전’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어울려 함께 물장구를 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느냐, 아니면 그곳을 개발해서 도로와 건물을 만들고 몇 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고 산과 바다에 찾아가 산과 바다가 아니라 인산인해를 발견하느냐 역시 우리의 몫이다.

오산천은 요즘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해 있다. 자전거 도로는 좋다. 맑음터공원에 있는 전망대도 좋다. 하지만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 지금의 어른을 욕하지 않을 도로를 만들고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귓구멍이 뚫려 있다고 해서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들리는 귀는 독선과 아집만 키우는 귀다. 빠르게 도로를 만들고 건물을 지을 사람에게 이 일은 쓸데없는 일로 보이거나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밥 사주고 욕먹지 말라.”는 옛말처럼 좋은 일을 하고 질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바보 같은 일도 필요하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는 말이라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한다. 경청하고 배려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내내 오산천을 돌아다니며 가장 괴로웠던 일은 사람들이 내게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는 질문이었다. 먹는 일에 도움도 되지 않고, 들어줄 사람도 없는 일을 왜 하느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의문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천을 돌아다니며 아무도 없는 땡볕에 기절하기도 여러 번,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일쑤였다.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오산천을 점점 더 알아갈수록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러기를 햇수로 3년. 2005년에야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기록을 책으로 내기는 요원한 일이다.

5년 전, 이 글의 가치를 알고 있다며 꼭 내야 한다고 말했던 염○○ 선배는 자기 뱃속을 불리기 위해 후배인 내게 사기를 치려고 했다. 그랬다,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당시의 오산은 그랬다― “형, 어디에 있소? 제발 부탁하건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이라도 해주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2009년부터 오산시민신문에 ‘김태우의 오산천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오산천의 2003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록을 연재라는 형태로 마감했다.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천의 지류가 달라졌을 뿐 아니라, 있었던 것이 사라지기도 없었던 것이 생기기도 했다. 하드 한 구석에 박혀 있던 원고를 연재하면서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2011년 현재의 오산은 2005년의 오산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 새로운 오산천의 모습을 찾아 걸어야만 하는 일이 과제로 남은 셈이다. 그 길, 옛날에는 혼자 걸었다면 이제는 함께 걷고 싶다. 묵묵히 2년간 과거의 오산천을 함께 걸었던 오산시민신문의 독자와 오산시민신문에 정말 감사드린다.

김태우 작가

기사입력: 2011/06/07 [18:43]  최종편집: ⓒ 오산시민신문

by 김태우 | 2011/06/09 03:14 | 오산천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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