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 일명 영웅문)을 읽고(20100427) [읽다] 길을 읽다

 

  내가 읽은 사조삼부곡은 1980년대에 번역 출간된 고려원의 통칭 영웅문이 아니다. 만약 그 때 무협지를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만약...아무리 가정해봐도 모르겠다. 직장 동료이자 항상 열심히 사는 모습에 귀감이 되는 도현샘의 한 달여 전 술자리에서의 소개로 2010년 3월 말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달여에 걸쳐 김영사에서 새롭게 펴낸 사조삼부곡을 읽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읽게 되는 무협지다.

  음, 거칠게 말해 지금까지 무협지는 내게 있어 '쓸모 없음'이라는 편견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실상 단 한 권의 무협지를 읽지도 않았음에도 무협지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렸던 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내 생각은 달라졌다. 그렇다 해서 불과 한 시간 전에 사조삼부곡을 끝낸 지금 무협지를 무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판단하려 해도 아직 내 생각이 뚜렷하지 않다. 그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제와서 예전처럼 무협지를 '쓸모 없음'이라 말할 수 없다는 거다.

김용의 사조삼부곡이라 일컫는 이 작품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1부는 사조영웅전이고 2부는 신조협려, 3부는 의천도룡기다. 장풍과 권풍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나오고 의리, 효, 복수, 사랑, 스승과 제자, 원수, 구음진경이라는 용어를 알게 해준 책. 읽는 동안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왜 사람들이 판타지에 빠지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해란 건 이렇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현재 내 직업의 특성상 쉬는 날이 없었는데-그 만큼 스트레스도 만만찮았다.- 사람들이 느끼는 일상 속의 무력함을 판타지가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거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고래의 작가 천명관의 신작 고령화 가족과 작가정신에서 완역으로 펴낸 모비딕을 읽고 있었다. 둘 모두 어떤 의미에서 판타지의 요소가 짙은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왜 난 그들의 작품들과 김용의 작품에 차별의 벽을 두었던 걸까? 그건 아마 피부의 두께-로티(R. Rorty) 식으로 말하자면 아무래도 우리는 피부를 뚫고 나올 수 없는 존재라는- 때문일까? 아니면 순수와 통속이라는 구태의연한 잣대가 아직 내게 남아 있기 때문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아직 나는 그 답을 무어라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난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주 큰 것을 하나 얻었다. 그건 무엇보다도 가벼움이다. 이 가벼움은 '가치 없음' 혹은 무용(無用)의 의미가 아니라 '쓸 데 없이 진지함', 혹은 '현학적 진지함', '반드시 쓸모 있어야 함'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내게 많이 묻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의 '가벼움'이다.

  그래, 난 항상 다짐한다. 좀 더 가볍게 살자고. 좀 더 즐겁게 살자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라 김용의 사조삼부곡을 읽었다며 나중에 혹 잊어버릴까봐 지금 이렇게 주절주절 쓰고 있으니 말이다. 에고.

아무튼 김용과는 잠시 이별하고 이제 천명관의 고래와 소피의 세계를 다시 꺼내 읽어봐야 할 듯....소피의 세계. 갑자기 재미있으면서,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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