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를 잊는 방법 外-2006년~2008년 [산문] 사자 이야기

사자를 잊는 방법

 

기억이 사라지고 추억이 사라지면 그 추억 속에 담긴 사람도 함께 사라진다. 사람을 가장 빨리 잊는 방법은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을 잊는 것이다. 그의 냄새, 그의 소리, 그와 함께 한 공간들,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사람은 사라진다.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가벼워져서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것이다. 사자를 잊는 방법도 이와 동일하다. 반대로 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를 기억하라. 기억하는 그 순간 사라진 사람은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때론 천사처럼, 때로는 악마처럼. (2006. 3. 19)

 

 

사자와 함께 데카르트의 cogito 고민하기

 

데카르트(Decartes)와 사자가 만난 건, 지난 일요일이다. 둘은 서로를 본 순간, 고민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사자가 학문의 원리를 모른다고 생각했고, 사자는 데카르트의 토대가 부실하다가 생각했다. 사자가 데카르트에게 물었다.

 

"당신은 기존의 학문이 올바른 방법 위에 서 있지 않다고 비판하며, 자신의 학문의 방법은 올바르고 굳건한 토대를 세우는 데 기여할 거라고 말했죠?"

 

"어이, 사자가 말을 하네? 이건 분명 악마의 농간이야."

 

", . 사자가 말을 하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나?"

 

"이것 봐. 감각은 정말이지 헛된 거야. 난 나의 사유함만 믿겠어."

 

"이봐. 내가 당신을 잡아먹어도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자는 자신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데카르트는 사자를 부인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꿈을 꾸기 때문이야."

 

"그럼, 그 꿈에서 깨시지."

 

"아니, 난 그럴 수 없어. 난 신이 아니야."

 

"당신이 신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당신은 인간이지. 그리고 데카르트이고. 당신은 사유하는 존재야.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고. 너나 나나 우리는 모두 1인칭과 3인칭을 가지고 있어. 너 홀로 1인칭이라고 생각하지는마. 내게도 자아가 있거든."

 

"그럼, 사자 너도 의심하는 네가 있다는 거냐?"

 

"당연하지. 난 의심하는 내가 있고, 그에 앞서 내겐 육체가 있어. 네가 기계라고 부르는 그 신체 말이야."

 

"하지만, 난 너를 부인하고 싶은 걸."

 

"데카르트! 그건 당신의 욕망에 불과해."

 

"내가 단지, 욕망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 몸 없이 네가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학문의 원리를 잘못 세우고 있는 거야. 원리의 방법에 있어, 넌 배제해서는 안될 것을 배제했어."

 

"아니야. 난 내 토대를 세웠어."

 

"과연, 너는 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넌, 사기꾼에 불과해."

 

"아니야. 난 사기 친 적 없어."

 

"네가 정말 학자라면 네가 알고 있는 것만 말해. 네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지는 마. 만약 네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고자 한다면, 네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한다고 말하라고."

 

말을 마친 사자는 데카르트를 꿀꺽 한 입에 삼켜버렸다. 데카르트의 목소리는 그 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사자가 트름을 했다. 꺼억~ (2006. 4. 13)

 

 

내가 널 기억하는 동안에는 잠시 쉬어도 돼. 그래도 괜찮아.

  

"사자씨! 너무 힘들어 쓰러지고 싶을 때가 있어. 특별한 이유도 사건도 없었는데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있어. 누굴 만나도 즐겁지 않을 때가 있어. 아무런 아쉬움도 없을 때가 있어. 습관처럼 굳어버린 것들을 지나쳐버릴 때도 있어. 그렇게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 난 어떻게 해야지? 이젠 어느 것도 내 심장을 떨리게 만들지 않아. 이러다가는 단단하게 굳어버려 내 피까지 굳어버릴지 몰라."

"그렇지. 그럴 때가 있어. 그럴 때는 사랑을 해봐!"

"하지만, 난 지금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걸."

"그럼, 가만히 가만히 쉬어봐! 항상 무언가에 집중할 필요는 없을런지 몰라. 가끔 너를 놓아두고 무거운 세상도 내려두고 눈을 감고 볼을 스치는 바람 소리도 무시하고, 쉬어봐."

"가볍게?"

"그래, 넌 조금 더 가벼워져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러다 날아 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좋지 않을까? 날아갈 수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넌 날아가지 않을 거야. 내가 널 기억하고 있을게. 네가 사라지지 않도록. 그러니 모든 걸 놓아두고 잠시 쉬어봐! 그래도 괜찮아."(2008. 4. 19)

 


그 무수한 상처에 대하여

  

밤새 눈이 쌓여 길이 사라질 정도였다. 창문을 열 수 조차 없을 만큼 창밖까지 눈으로 덮였던 그해 겨울, 나는 눈동굴을 만들어서 옆집에 사는 사자를 방문했다.

", 눈이 너무 많이 쌓였어. 이런 눈은 정말이지 처음이야."

"그렇지.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줄까?"

사자가 내게 따뜻한 커피와 함께 비스킷을 건냈다.

"그런데, 사자 너에게는 상처가 없는 것만 같아. 평소에 내게 하는 말만 들어도 그런 것 같고."

"그런 것 같아? 너는 내 갈기 밑에 숨겨진 무수한 상처가 보이지 않는가보지?"

"내게 보이는 건 너의 황금색 갈기뿐이니까."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야. 상처가 많을 수록 그것들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럼 사람들에게 당신의 상처가 어디냐고 물어야 하는 걸까?"

"그렇진 않아. 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덮였다고 그 아래에 길이며, 강이며, 산이 없는 게 아니듯 상처 없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난 무얼하면 되는 걸까?"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아직 그게 무언지 모르거든 네가 가장 재미있는 일을 하면 될 거야. 너의 자리에서, 지금 당장!"(2008. 2. 20)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하루종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나는 사자에게 물었다.

: "사자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뭘까?"

사자: "그나저나 오늘은 하루종일 비만 내리는구나이 땅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비가 내리는구나."

사자는 묻는 얘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얘기를 한다.

: "이렇게 비가 내리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거잖아비가 없는 곳에는 생명도 없어."

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냐고?"라고 되물었다.

: "난 그게 궁금해."

사자: "그렇구나넌 무엇이 가장 무서운데?"

: "글쎄예전에는 골목길에서 부딪힐 수 있는 깡패들과사막에서 우연히 부딪칠 수도 있는 사자가 가장 무서웠어하지만 이젠 사자와 친구가 되었으니사자는 무섭지 않아." 라고 말하며 나는 그의 갈기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사자: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무서워할까?" 사자는 아까부터 계속 대답하지는 않고 되묻기만 한다.

: "사람들은 아마 돈을 가장 무서워하지 않을까?"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사자는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돈 1억을 주면 무서워할까?"라고 말했다.

: "아니그렇지는 않을 거야아마 좋아서 폴짝폴짝 뛸 걸!"

사자: "그럼막연히 돈이 가장 무서운 건 아니네."

: "하긴 그래돈이 가장 무서운 건 아니지그럼귀신일까?"

사자: "귀신넌 귀신이 있다고 믿는 거야?"

: "믿지는 않지만무서운 걸."

사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걸 왜 무서워 하지?"

: "난 알 수 없거든."

사자: "그렇다면 알 수 없는 건 무서운 걸까?"

: "아마 그렇지 않을까사람들은 대개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해죽음도 그렇고."

사자: "어차피 죽음이란 죽음 이후에나 알 수 있는 거야넌 내게 죽음 이후의 것 중에서 가장 무엇이 두려운지를 물은 거야?"

: "아니그건 아니야정확한 내 질문은 '지금 이땅에서가장 무서운 게 뭐냐는 거야."

사자: "이제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구나그래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습관이야."

: "습관?"

사자: "맞아습관습관은 중독이야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본능적으로 습관을 갖게 되거든."

: "습관이 무섭다는 말은 처음 들어."

사자: "아니처음은 아닐 거야텔레비전에 중독된 인간들사육사가 던져주는 죽은 고기에 중독된 사자들이 모든 것이 습관이야돈돈돈 물신에 중독된 인간들예전에는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이 살았으면서 이제는 에어컨이 없는 공간에 가면 죽겠다고 죽겠다고 습관처럼 내 뱉는 말들습관처럼 배어버린 진심 없는 안부들이 모든 게 습관이야.”

: “그렇다면 난 예전부터 습관에 찌들어버렸는 걸.”

사자: “맞는 말이야우리 모두는 습관의 노예지육식의 노예채식의 노예사랑이 뭔지도 몰랐으면서 사랑도 해본 적 없으면서 사랑에 중독된 인간들사랑을 해봐서 누군가에게 익숙해지는 사소한 것들사소한 사건들사소한 기억들하지만 절대로 사소하지 않은 것들태어나서 외로움이 뭔지도 몰랐으면서 외로움이라 부르는 것들이 모든 것들.”

: “습관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사자: “맞아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습관은 희망이야그 누구도 죽는 순간까지죽어가면서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아죽는다면 고통이 사라질 거라는 희망누구도 알 수 없는 희망가장 무서운 습관살아 있다는 건습관 속에서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는 거야.그게 바로 가장 무서운 거야버릴 수 없기 때문에.”

: “내가 가진 것은 이 만큼인데난 항상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언젠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희망해.”

사자: “그래그래서 넌 숨 쉬고 있는 거야살아있기 때문에습관 때문에.”

: “난 계속 숨 쉬고 있을 거야.”

사자: “그래너도 나도.”

숨쉬기 운동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2007. 7. 8)

 

 

사자날다

 

스핑크스 알아스핑크스처럼 원래 사자에게는 날개가 있었어오이디푸스 때문에 그 날개가 꺾이긴 했지만 말이야원래 사자는 날아다녔던 거야뭐라고그럼 사자는 조류냐고니가 보기에 내가 닭으로 보여조류가 아니라날아다니는 사자인 거야하지만 지금 세상은 날개가 필요가 없어설령 날개가 있다고 해도 필요 없는 것은 퇴화될 테니까내가 가진 건 무엇이든 물어 뜯을 수 있는 튼튼한 어금니와 송곳니야그리고 이 날카로운 발톱까지그래도 네가 굳이 사자가 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한 번 정도 날아줄 수는 있어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 등에 숨어 있는 날개를 꺼내야해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꼭꼭 숨어버린 날개를 말이야보여?이게 바로 사자의 날개야볼 품 없다고날 수만 있으면 되지 어떻게 생기든 무슨 상관이야이제부터 날 거야똑똑히 봐야해.

사자날다하지만 누구도 사자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모두의 눈에 사자의 나는 모습은 껑충 땅 위로 도약했다가 다시 땅을 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분명결단코사자는 날았다날개가 없는 그대도 날 수 있다껑충뛰어오르자껑충!(2007. 8. 3)

 

  

타인의 취향

 

사자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그에게는 과거가 있고 추억이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 추억 속에는 사자가 있다사자가 떠올리는 추억 속에는 사자가 있다그는 모든 경험에서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는다사랑도삶도 사자에게는 사자의 사랑이사자의 삶이 있다.그 속에서 사자는 살아있다그가 떠올리는 모든 과거는 무지개 빛깔로 다시 살아난다하지만 사자가 떠올리는 과거가 아닌사자의 과거 속에서 사자는 언제나 타인일 뿐이다사자가 금남로 거리를 걷는다거리를 걷는 사람마다 자신의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인다그들의 과거는자신의 과거가 아닌 타인의 추억으로 남는다타인의 취향타인의 바램 속에서 거리를 뛰어다니는 좀비들을 보며 사자는 눈물을 흘린다사자는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그것보다 어려운 일은 타인의 삶을 사는 일이다오늘도 사람들은 각자 타인의 삶을 살아간다그곳에는 이타심이 없다하지만 이기심도 없다나 없는 이기심.얼마나 고상한 현대인의 취향이란 말인가얼어죽을이라고 사자가 말한다.(2007. 4. 29)


 

가볍게 가볍게

 

중력은 느끼려 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어굳이 중력을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야가볍게 가볍게 사는 것도 좋아어쩌면 지구 밖으로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지는 마너는 공기보다는 무겁고바위보다는 가벼우니까아무도 바위가 지구 밖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넌 그저한 곳에 머물러 살지 말고너의 두 다리로 무수한 꼭짓점을 만들며,옮겨 다니면 돼너의 사건하나하나가 추억이 되고힘이 되고때론 슬픔이 될 거야기쁨일 거야세상에 우여곡절이 없는 인생은 없어너의 추억을 건조하게 만들지는 마그 속에 기억할 만한 건 아무 것도 없을 거야너의 기억 속에서 짠내가 날 때기억은 추억이 되는 거야불쑥 불쑥 솟아나서 너를 괴롭히기도 하겠지하지만 때로는 너의 어깨를 다독거리며힘내라고 말하는 것도 추억이야.잊혀진 것이 아니라결국 만들어 가는 추억너는 살아 있으므로 중력 속에서 말하는 존재야살아즐겁게가볍게 가볍게날아갈 것처럼.(2007.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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